牟田口廉也.
그의 만행을 아는
한국 사람들이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라고 부른다.
중일전쟁의 방아쇠를 당긴 인간. 그것도 월권행위였다.
밤중에 휘하 병사 하나가 화장실에 가서 인원수가 안 맞자
중국군에 협조를 요청해 병사를 찾던 도중 독단으로 중국군을 공격,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그 때 그는 전쟁을 일으킬 권한이 없는 일개 부대장.
이후에도 임팔 작전 등으로 일본군을 수만 단위로 자폭시켜버린
일본 패망과
조선 독립의 일등공신(?) 중 하나. 파벌과 인맥으로 카스트제도 같은 계급이 결정되는 일본군 지휘관답게,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고 요직에 남았으며, 심지어 전후에도 잘 먹고 잘 살았다. 아무튼 수 없이 정신나간 짓거리를 저질렀는데, 예를 들어 일선 부대에서 보급품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하자...
'일본인은 원래 초식동물이니 가다가 길가에 난 풀을 뜯어먹으며 진격하라'
라는 정신 나간 지령을 내렸다고 하니, 이것만 보아도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는 인물.
'무기의 부족이 패배의 원인은 될 수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으나, '포탄은 자동차 대신 소나 말에 싣고 가다가 포탄을 다 쓰면 필요 없어진 소나 말을 먹으면 된다', '정글에서 비행기를 어디에다가 쓰냐'와 같은 망언 때문에 빛이 바랬다.
임팔 작전은 인도차이나를 지나
인도 북부지역을 직접 압박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작전 입안과 강행 자체가 자신의 체면(...) 때문이었다고 주위에서 증언하고 있으며, 15일 짜리 작전이라고 휘하 부대에 지시해놓고는 실제로 작전 기간이 3달이 넘어갔다.
영국군과 마주칠 때 병력의 절반 이상이 영양 부족과 피로로 전투가 힘든 상태였지만, 그 이후로도 보급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휘하 부대장이 계속 철수를 요구함에도, 부하들이 전장에서 무의미하게 죽어나가는 상황을 파악하고도 진격하라고 계속 독촉하고선 실제로 자신은 초조해했다.
실제로 작전실패가 확실한 상황에서도 상황을 파악하러 온 대본영의 장군 앞에서 체면 때문에 차마 후퇴하겠다고 말도 못하고, 후퇴하라고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을 못 했다는 엄청난 위대함을 자랑한다.
결국 전투는 참다가, 참다가, 참다가 부하들의 몰골을 보다 못 한 휘하 31사단장 사토 중장이 독단으로 후퇴를 결정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로 이 사토 중장이 무다구치를 만나러 오자, 자결해버리라며 단도를 남겨두고 정작 자신은 숨어버리는(...) 추태를 보였으며, 그는 무다구치를 이 칼로 죽여버리겠다며 칼을 갖고 가버리기도 했다.
당시, 31사단장 사토 중장이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는 그가 무다구치의 15군 사령부에 보낸 전문에서 절절히 느낄 수 있다.
"공격 계속 명령 접수했음. 그러나 명령만으로 병력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귀하의 사고 방식은 이 작전을 실패로 이끌어 가는 중대요인이 되고 있음. 목하 본 사단의 1만 장병은 아사 직전 상태에 놓여있음. 탄약은 고갈되어 도수의 병력으로 화해버렸음.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 것은 모두가 귀 제15군에게 그 책임이 있음. 귀군은 이상 사실을 판단, 반성하여 본 작전을 즉시 중지함으로써 폐하의 적자들을 개죽음으로 이끄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과감한 조치를 강구하기 바람."
그러나 정작, 그 후에 사토 중장은 일본에 '정신병'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소환돼버리고, 무다구치는 여전히 요직에 남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만 봐도 구 일본군이라는게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 집단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최종 계급은 육군
중장. 3성장군이 이래서야 구 일본군이 미군쯤의 병력이 있어도 전쟁이 쉽지 않았을것 같다(...)
전후 일본군의 여러 장성들이 전범재판을 통해 사형 등에 처해졌으나, 이 인간은 임팔 작전에서 일본군에 다대한 피해를 끼치는 등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에
... 불기소 처분, 재판에 부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성부터가 無駄口(헛소리, 쓸데없는 말)와 동음이의어.
이상하게 검색을 해보면 중국 사이트들이 많이 걸린다.
PS.1 임팔전선의 전황이 악화되던 당시... 자신은 전선 지휘부 옆에다 기생집(...)을 차려놓고 무조건 오후5시 땡~ 하면 업무 마치고 기생집에 들어가서 술마시며 노느라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PS.2 그러다가 전황이 한참 악화되자 전선지휘도 제대로 안하는 주제에 사령부 옆에다가 무려 제단을 쌓아두고 신에게 이기게 해달라고 비느라 그나마 주간에 하던 업무처리조차 전부 뒤로 밀어버렸다(...).
PS.3 전쟁이 끝난 뒤에 임팔전선에서 죽은 희생자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낼 때 그 자리에 나타나서 '임팔전선의 패배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부하들이 잘못 싸운 것이라는 유인물을 나눠주려다가 뭇매를 맞았다고(...). 심지어는 죽은 뒤에 유서에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다른 놈들이 못나서 실패한...'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와... 뻔뻔함이 밑도 끝도 없다(...).
PS.4 임팔 작전 후 자결 대사 일화. 임팔 작전으로 2만 팀킬에 성공한 무다구치 렌야는 "ㅆㅍ 책임감 느낀다. 콱 자결해 버릴까?"라는 상투적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나 수석부관이 "원래 입장상 이런 건 말려야 하는데, 님은 좀 아닌 듯."라며 조용히 권총을 내밀자 째려보고는 살아갈 의지를 곧추 세웠다고.
정말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분?만이 아니십니다? 또있습니다
츠지 마사노부
별명은
"작전의 신". 하지만 이게
"자칭"이었다는 게 제일 큰 문제로,
근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 이외의 조건은 무시해버리는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일본군의 정신력은 대단하기 때문에, 적의 나약한 정신력보다 강하다는 논리로 모든 적군을 상대하려 한게 아닌지 의심된다. 다음은 그의 어마어마한 업적(?)들을 나열한 것.
무다구치가 일으켜 결국 중일전쟁의 시초가 된 노구교 사건. 평범한 분쟁으로 끝날 사건을 전면전으로 확대시켜 중일전쟁으로 이끔. 이것만으로 독립유공자 자격 충분.
2. 노몬한 전투(할힌골 전투)
작전계획을 세운 츠지 마사노부.
일선지휘관들: 이건 미친 짓이야. 당장 작전 수정해야 해.
츠지 마사노부: '닥쳐'
수차례 건의되었지만 결국 작전은 실행되었고, 일본군은 다진 고기가 돼서 들판에 거름으로 뿌려짐.
패전을 보고하면서 츠지 마사노부는 "소관의 작전계획은 완벽했으나 일선 지휘관들의 졸렬한 지휘와 감투정신의 부재로 패전"이라고 대본영에 보고.
결국 일선부대 연대장들 줄줄이 할복자결.
3. 남방작전
이윽고 14군 전체에 "모든
미군 포로를 처형하라"라는 구두명령이 발신되고, 그 명령에 의구심을 품은 대령 하나가 문서로 된 명령을 요구하면서 진상을 알아봄.
실상은 츠지 마사노부가 뒤에서 농간을 부리며 전화로 "포로 학살"을 대본영의 명령이라고 왜곡하며 지시내림.
결국 필리핀에서 미군 포로 대량 학살 발생.
4. 과달카날
이미 이치키 지대의 1차 공격이 전멸로 끝난 상태에서 대본영은 전황 파악을 위하여 "작전의 신" 츠지 마사노부를 과달카날로 파견.
가와구치 소장의 필사적인 2차 공격마저도 압도적인 미군의 화력에 말려 패배한 상태에서 츠지 마사노부는
"험난한 밀림을 빠르게 돌파한 후 전부대원 착검한 채 야습한다"(야밤에
반자이 어택)라는 계획을 수립.
가와구치 소장은 이미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을 경험한 후였으므로 이런 "정신나간 계획은 전멸을 불러올 뿐이다"라며 좀더 합리적인 작전계획 수립할 것을 요구.
우리의 호프 츠지 마사노부는 "미군은 비행장에서 테니스나 치면서 놀고 있고 가와구치 소장은 감투정신이 부족하여 소극적인 지휘를 한다"라고 대본영에 보고.
결국 가와구치 소장은 신병상의 이유로 본국으로 송환되고 "테니스장 야습 돌격"은 전멸로 끝남.
전후 미군의 문서에는 가와구치 소장의 2차 공격만이 미군에게 실로 지대한 위협이었다고 평가함
5. 패전후
방콕에서 패전 소식을 듣고, '나는 민족의 재건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며 스님으로 분장하고는 잠적했다.(…) 그후 전범시효가 풀리자마자 일본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돈을 벌었고, 정계로 진출하여 의원에 당선.
68년 캄보디아로 여행간 후 실종됨.
다만 한 개인으로서의 츠지 마사노부는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깔끔한 용모에 친절하고 심지 곧은 성격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며 언제나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을 강조했다고 한다. 실제 언제나 전장에서는 전선에서 현장의 분위기를 살피고 일선 병사들에게도 자주 나타나 병사들의 생활고충을 듣는 등, 개인으로서는 모범적인 군인상이었지만, 일부 장교들은 그를 둘도 없는 멍청이로 취급하기도 했다고 하는 것이 개인적인 처신과 군인으로서의 능력은 크게 다르다는 교훈을 남겨주는 듯하다.(심지어 이시하라 칸지의 영향을 받아 만주국의 건국이념인 오족협화를 실제로 믿고 있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흠좀무)
종전후 작성되어 2005년경 공개된
CIA 극비문서는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는 남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분들이 있어서 독립을 했군요-_-
아무튼 이 세상에는 재능을 썩히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